박노영(朴老英)(一名:노壽)

 1900 ∼ 1945

독립운동가

자는 노영(老英)

1919년 3.1독립만세 시 경성보통고등학교 3학년 재학중 서울학생대표로 열렬한 항일투사로 한국독립운동사 제5권에 130면을 차지하는 박노영재판기록이 있어 당시 최고형인 2년간 복역후 다시 출생지인 함경북도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함흥감옥에서 10년형을 받고 복역중 만주건국기념특사로 석방되어 중국용정(中國龍井)에 망명하여 대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중 또다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추방령에 의하여 하얼빈에 피신 언둔생활중 8.15 해방을 맞이하여 3일만인 1945년 8월 17일 향년 45세로 작고하였다. 38선 이북 거주자로 하얼빈에서 작고함으로 인하여 아직 표창도 받지 못하였다.

리스트

박창로(朴昌魯) (31世)
박형관(朴炯관) (36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