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박씨의유래

울산박씨 시조(蔚山朴氏 始祖)는 흥려백 시호 장무공 휘 윤웅(興麗伯 諡號 莊武公 諱 允雄)이시다
蔚山은 조선태종(朝鮮太宗)13년(1413)에 지명(地名)이 흥려부(興麗府)에서 울산(蔚山)으로 개칭(改稱)되었다.


오늘날 우리본관(本貫)을 울산(蔚山)으로 사용한 것은 조선 숙종 을유년(朝鮮肅宗 乙酉年)1705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암공(東巖公) 두세 선조(斗世 先祖)께서 울산부사(蔚山府使)로 부임(赴任)하여 초간보(初刊譜)(첫번째 발간한 족보)를 수찬(收纂)하여 책 표제(表題)에 울산박씨 족보(蔚山朴氏 族譜)라고 기록한데서 정립(定立)되어 오늘날 사용하고 있다.

公은 신라(新羅) 시조왕(始祖王) 혁거세(赫居世)의 후손(後孫)으로 신라 효공왕(新羅 孝恭王) 5년(901) 신유(辛酉)에 계변성下(現 蔚山 中區 半鷗洞 舊校마을)에 웅거(雄據)하여 신학성장군(神鶴城將軍)이라 칭(稱)하여 이 지역을 통치하는 호족장(豪族長)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소국왕자격(小國王者格)으로 번창 하였다.

고려개국(918)시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올랐고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벽상공신(壁上功臣)이 되어 숭록대부 대장군(崇祿大夫 大將軍)의 관작(官爵)을 하사(下賜)받으시고 통치(統治)하던 동진(東津), 하곡(河曲),동안(洞安),우풍(虞風),임관(臨關).등 5개 군,현(郡,縣)을 통합하여 흥려부(興麗府)로 승격 (현재 울산시는 이날 10월1일을 울산시민의 날로 제정함)시켜 공(公)을 삼한공신흥려백(三韓功臣興麗伯)에 봉작(封爵)하여 숭록대부 대장군(崇祿大夫 大將軍)에 배명되고 통합 삼한 벽상공신에 녹훈되어 통치하던 흥려부 전지역(興麗府 全地域)을 사패지(賜牌地)로 하사(下賜) 받았다.

아직도 그 당시 사패지(賜牌地) 일부인 미역바위 곽암(藿巖) 12區 中1區가 (蔚山 北區 江東 舊柳里 海中)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것은 천여 년(千餘 年)의 역사를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이 미역바위는 일명 양반(兩班)바위 윤웅(允雄)바위로 부르고 있으며 서기2001년 12월 20일 울산광역시 지방문화재(기념물)제38호로 지정되어 울산박씨 종중에서 관리하며 여기서 생산되는 미역을 매년 3月中丁日 公의 향제시 제수(享祭時 祭需)로 진공(進貢)하고 있다.

고려 문종이래 공의 신주를 성황당(城隍堂)에 모셔 계변천신(戒邊天神)으로 숭앙(崇仰)하여 수호신(守護神)으로 받들고 있다. 그러므로 공은 오늘의 울산을 있게 한 원훈(元勳)이 시며 그 공업(功業)은 동해의 물결아래 저 곽암(藿巖)과 함께 천여 년 세월 속에 빛나고 있으며 만세에 불후(不朽)하리 로다.